Saturday, March 23, 2013

인도: 바라나시의 여성 생존자와 인권대변자인 PVCHR에 대한 위협



 

주제: 인간존엄성, 인권대변자에 대한 위협, 여성에 대한 폭력

 

 

친애하는 여러분께,

 

사파나 차우라시야 씨의 기자회견이 뉴스로 나간 날인 2013 1 16 오후 2 30분경 가해자인 수닐 쿠마르 굽타 씨로부터 위협을 당한 PVCHR 대표인 레닌 라구반쉬 씨는 1 24 바라나시의 경찰서로부터 위협에 관한 조치에 대하여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2012 12 3일과 5일에 제기된 여성폭력에 관하여는 어떠한 조치나 응답도 얻을 없었습니다. 사파나의 남편인 굽타 씨는 2012 12 16일과 20일에 레닌 라구반쉬 씨와 쉬러티 나그반쉬 씨에게 위협을 가하였는데, 지난 2013 1 16 레닌 라구반쉬 씨의 핸드폰으로 다시 위협을 가한 것이었습니다.

 

 

사례의 정황:

 

PVCHR에서는 남편으로부터 잔혹한 행위를 당한 23살의 사파나 차우라시야 씨를 만났습니다. 사파나 씨의 남편은 사파나 씨를 대중 앞에서 굴욕을 주면서 그녀의 존엄성을 망가뜨리고 성적으로도 학대하고, 문자메시지를 통하여도 매일 괴롭혔습니다. 사파나 씨는 남편의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친척, 친구, 이웃들과 얘기하는 것조차 금지당했고, 만일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발각될 시에 무서운 결과를 맞이하게 될거라고 남편에게 위협을 당했습니다.

 

사파나 뿐만이 아닌 굽타 씨의 부인도 이러한 학대를 당하였고, 그로 인해 부인은 자살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권위로써 안에서 이익을 받기에 누구도 그를 향해 고소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그는 그와 결혼한 여성을 공격하는 행위를 통하여 높은 만족감을 얻고 있습니다.(참고로 그는 권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데, 자기 주변 사람들과 권력에 대해 얘기하고 과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희생자가 코좌 경찰서에 학대에 대해 신고하러 갔으나, 경찰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오히려 희생자에게 돌아가라고 위협하여 신고가 이루어지지 못한 일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사파나 씨가 굽타 씨의 학대에 놀라 친정집으로 탈출을 적이 있습니다. 때에 굽타 씨는 사파나 씨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 그녀에게 보냈고, 아이들이 꼴이 나는 보고 싶지 않으면 돌아오라 위협을 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돌아가는 것을 거부했고, 그녀의 형제인 쉬암선더 씨가 경찰에 그를 고소하였지만, 굽타 씨는 풀려나고 그녀는 돌아갈 밖에 없었습니다.

 

 

사파나 차우라시야 씨의 증언:

 

저는 23살인 사파나 차우라시야입니다. 우따르 프라데시 주의 바라나시의 란카 경찰서 관할 삼네 가트 지역에서 거주하시는 어머니는 문니 데비 씨이고 아버지는 람나가얀 차우라시야 씨입니다. 가족은 외에도 2명의 남자형제, 4명의 여자형제가 있는데, 저는 중에서 막내입니다.

저는 결혼을 위해 종종 들르는 중매쟁이 키란 씨를 어머니를 통해 만났습니다. 결혼을 위한 사진을 찍고 얼마 뒤에 좋은 남자가 주선이 되었다며 저를 산데쉬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저는 벨루푸르 경찰서 관할인 고좌의 람만디르의 카쉬미르 간즈에 사는 칸하이야 굽타씨의 아들인 순일 쿠마르 굽타 씨와 그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친구인 비노드 , 또비 , 반티 , 람부 그리고 변호사와 함께 저에게 종이에 서명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계속 강요했고, 모습에 자신이 원했던 행복한 결혼 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질 있을 것인지 염려되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여기에 있고 싶지 않고 서명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결국 키란 씨는 강제로 서명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2005 6 26일의 일입니다.

 

4 후에 저는 쉬브 템플에서 그와 강제로 혼인했고 그는 저를 데려갔습니다. 제가 그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그의 다른 가족들 앞에서 저를 학대하기 시작했고, 제가 저항하자 그는 그의 가족들 앞에서 뺨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뒤에 저는 그의 가족들과 대면하기 싫었습니다. 그의 집에서 살기 시작한 후에 저는 그에게 17살인 아들과 15살인 딸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저녁 저는 그에게 이상 함께 수도 없고 곳에 머무르기도 싫다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프다는 등의 핑계를 만들어 제가 곳에 있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머무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다고 생각했고, 곳에서 계속 지내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매일매일 저를 학대하는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엔 이상 일반적인 남편과 아내의 달콤한 모습 같은 것은 있을 없었습니다. 제가 잠시 친정에 다녀와도 되는지 물었을 , 그는 무조건 된다고만 했습니다. 그는 그의 친척들이나 친구들, 심지어 가족들과도 이야기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아내와 얘기도 하지 말고 접근하면 위협으로 그들을 멀리 떠나보냈습니다.

 

그는 절대 저를 아내로 봐주거나 남편으로서 대해주지 않았고, 그의 가족들도 저에게 집안의 법도만으로 자신을 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저는 집에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에게조차 저를 만나거나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우리 사이의 성관계를 mms 만들었고, 제가 성관계를 거절할 경우에는 mms 대중들에게 퍼뜨리겠다며 협박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는 정기적으로 형제들을 죽이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그의 이전 아내도 집안에서 이런 대우를 받았고, 결국 그녀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여러 학대행위에 대한 법적인 제재가 없었기에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있었습니다.

 

남편은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고, 동네에서 그는 권력이 있는 사람인데,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력에 대해 얘기하고 과시하기를 좋아합니다. 어떤 날엔 제가 코좌 경찰에 가서 그에 대해 고소하고 피해 상황을 얘기했음에도 경찰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사건을 덮어두고 오히려 저에게 꺼지라며 위협을 가하였습니다.

 

번은 학대가 너무 심해 잠시 친정으로 피신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옷을 갈기갈기 찢어 제게 보냈고, 돌아오지 않을 경우에 아이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며 돌아오기를 강요했습니다. 저는 돌아가는 것을 거부했고, 남자형제인 쉬암선더는 경찰에 그를 고소하였지만, 그는 잠시 뒤에 금방 풀려나왔습니다.

 

순일 굽타는 정신의 피폐와 함께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게 마약까지 주입시켰습니다. 얼굴은 말라갔고 저는 5 아들도 돌보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마약의 나쁜 영향으로 제가 심하게 아팠을 , 바라나시 힌두대학교에서 근무하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를 만날 있었습니다. 의사가 제게 남편과 같이 살고 싶지 않은지를 물었을 , 두려움 때문에 정확한 상황을 얘기할 없었습니다. 그리고 질문은 남편이 이미 의사와 가족들에게 자신의 아내가 자기와 어딜 가든지 살고 싶어 하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해놓은 상태였습니다.

 

남편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행동을 바꿔 자신을 엄청 사랑하는 듯이 행동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들은 사람들을 속이기에 충분했습니다.

 

남편은 계속 정신을 피폐화시켰고 종종 제가 죽는다면 자신은 엄청난 보험금을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생명을 담보한 보험을 이미 들어놨던 것입니다.

 

번은 제가 마약의 부작용으로 정신을 차리고 있을 , 남편은 머리를 흉측하게 자르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제가 미쳤다고 그래서 머리를 흉측하게 잘라버렸다고 떠벌리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없었고 이런 일이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수가 없었습니다. 일은 지금 생각해도 한이 서리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아들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 아들과 같이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가 돌아간다면, 남편은 저를 죽이고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과 그의 가족들이 제게 아무리 간청하거나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 해도 저는 그들에게 정말 돌아가기 싫고, 더더구나 남편과는 같이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현재 이혼을 원하고 아들이 무사하기만을 뿐입니다.

 

사파나 차우라시야의 증언이 담긴 영상입니다: http://vimeo.com/55757055

힌디어로 긴급호소문입니다: http://www.pvchr.net/2012/12/heard-to-unheard.html


 

 

2012 12 5 PVCHR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여성위원회, 경찰청장, 우따르 프라데쉬 주지사, 장관, 수상 등에게 서한을 전달했습니다.

 

DGP 민원부서는 이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 12 15일에 사건번호 42218/24/72/2012/UC 경찰청장에게 인계했습니다.


이러한 조치가 취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사파나 차우라시야 씨의 남자형제인 쉬얌 선더 씨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쉬얌 선더 씨는 두려움 때문에 벨루푸르 경찰서에서 공식 성명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파나아드 씨와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순일 굽타 씨는 그의 동료와 함께 레닌 라구반쉬 씨가 뭄바이에 있을 때인 2012 12 16 저녁 8 30 경에 PVCHR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그는 PVCHR 이사 중에 명인 쉬러티 나그반쉬 씨에게 그녀의 아내를 만나야 한다며 45분가량 행패를 부렸습니다. 2012 12 20 아침 8 30분경에 순일 굽타 씨는 다시 PVCHR사무실로 찾아와 레닌 씨를 협박했습니다. 그리고 2013 1 16 오전 11 52 , 레닌 씨는 그의 핸드폰으로 위협적인 전화를 받았고, 즉시 이메일과 서한을 통하여 국가인권위원회와 바라나시 SSP 사항에 대해 접수를 하였습니다. http://petition-nhrc.blogspot.in/2013/01/fwd-0.html 바라나시 경찰의 무관심 혹은 부정적 반응 등의 개입이 있은 후에, 사파나 씨는 2013 1 23 기자 회견을 열었고 언론에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2013 1 24 레닌 씨는 2013 1 16일의 가해자인 순일 쿠마르 굽타 씨에 대한 사건이 반대 서한으로 인해 무효화되었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파나와 PVCHR 활동가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레닌씨는 국가인권위원회, 주정부 관계자, 연방정부 주정부 장관들, 수상, DGP, IG, SSP, SP 탄원서를 넣었습니다.


 

 

레닌 라구반쉬 씨의 증언:

 

2013 1 23 사파나 차우라시야 씨는 기자 회견을 가졌고, 당일 뉴스들은 기자 회견을 심도 있게 다뤘습니다. 2013 1 24 뉴스가 방송되고 있을 , 오후 2 30분경 캔톤먼트 경찰서로부터 경관이 제게 알려줄 것이 있다며 찾아왔습니다. 공지문에서 2013 1 16일경 협박 가해자인 순일 쿠마르 굽타 씨가 저를 고소한 사실을 있었습니다. 문서에는 2012 12 20 순일 쿠마르 굽타 씨가 사무실로 와서 저를 위협했던 것과 바라나시 경찰서장에게 위협에 대한 신고를 접수한 것도 기재되어 있었으나 신고서한에 관한 어떠한 조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문서에는 순일 쿠마르 굽타 씨가 사무실에 왔을 , 오히려 제가 그를 협박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2012 12 3, 바라나시 경찰서 여성문제 담당부서에 사파나 차우라시야 씨가 신고서한을 제출 했을 , 오히려 경찰로부터 위협을 당했었기 때문에, 저와 함께 2012 12 5일에 다시 신고서한을 제출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인 2013 1 19 사파나 차우라시야 씨는 비정상적인 태도였던 경찰서 여성담당부서에 대해 신고하는 서한을 보냈고, 저는 경찰서장에게 2013 1 22 아무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여성담당부서에 대해 항의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전의 신고서한에 의해 국가인권위원회는 SSP에게 직접적으로 2012 12 15일에 조사방법을 제시했고 4 동안의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이것을 제외하고서라도, 바라나시 경찰은 2002 순일 쿠마르 굽타의 아내인 소니 굽타의 부자연스러운 죽음에도 덮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사실로 우리는 순일 쿠마르 굽타가 바라나시 경찰과 모종의 관계에 있다는 있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바라나시 SSP에서 했던 진술 혹은 그녀의 진술이 담긴 비디오를 보신다면

(http://vimeo.com/55757055), 순일 쿠마르 굽타 씨가 수많은 범죄에 연관되어 있고 범죄행위와 연관하여 마피아소란 가명을 사용했음을 명백히 있을 것입니다. 저는 또한 도시의 몇몇 고위관리로부터 사파나 차우라시야 인권침해 사건에 이상 개입하지 말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경찰과 마피아가 연관되어 있음을 확실하게 있었고, 그들이 나와 가족들을 죽이기 위해 시도하는 것과 저를 함정에 빠뜨리려 하는 또한 있었습니다. 저는 2012 12 20일과 2013 1 16일에 각각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요청합니다. 자신과 가족, 사파나 차우라시야 씨와 그녀의 가족들을 보호해주시고, 미디어, 경찰, 시민사회단체, 변호사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부패되어 있기 때문에 CBI CBCID에서 보다 강도 높은 조사를 해주시기를 말입니다. 생애 처음으로 저는 죽음이 가까이에 왔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죽음을 목전에 예수처럼, 가부장제도와 부패에 저항하여 목숨을 다하여 싸울 것입니다. 만일 제가 죽더라도, PVCHR식구들을 잊지말아주시고 아들의 보호를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아들 카비어 카루니크의 생일인 2013 1 24일에 드리는 저의 고백입니다.

추가 정보:

 

인도가 독립을 쟁취한지 65년이 되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 국가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모두를 향한 정의는 멀게만 보입니다. 십억 여명이 살고 있는 곳에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카스트 제도 때문입니다. 인도 내의 정경유착의 심화로 인하여 가지지 못한 (특히, 문맹과 가난에 의해 파괴된 달리트) 정의는 거부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달리트를 향한 착취와 잔혹함, 그들을 향한 폭력이 위장되는 현실, 부유한 사람들의 착취에 대한 신고 거부, 거짓 고발에 따른 임의적인 체포, 불법적인 구금, 구금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이러한 것들은 달리트에게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감시제도의 부재로 인해, 특히 인도의 지방에서는 법을 수호해야할 사람들이 오히려 법의 권위를 이용하여 경찰 주권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무능력한 인도 국가인권위원회와 각종 회사자본들과 연계된 주정부, 기능 장애가 생긴 법적인 체계는 우울한 청사진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인권활동 전문가인 레닌 라구반쉬 씨는 달리트를 향한 범죄율이 가장 높은 우따르 프라데쉬 주에서 그만의 독특한 방법(달리트에 대한 행정적 지원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등의)으로 인권을 향해 싸우고 있습니다. 달리트들은 상위 카스트에 의해 굴욕과 고문(신발로 만든 화환을 건다든지, 얼굴을 검게 칠한다든지, 엉덩이로만 다니게 한다든지 등의) 당하고 있습니다. 달리트를 향한 폭력, 살인, 불법 구금 등의 주요 사건 외에도 암묵적인 카스트에 기반한 차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식민지적 잔재로 인해 고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독립 인도의 행정적 틀은 정경유착에 따른 만연한 부패로 인해, 특히 인도의 지방정부는 실패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유르베다 마사지에 종사했던 레닌 라구반쉬 씨는 우따르 프라데쉬 동부 쪽과 바라나시에 있는 채무자들, 아동노동자들, 달리트들의 인권보장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6, 레닌 씨는 그의 아내 쉬러티와 함께 인권교류를 활성화하고 약자들을 지원하며 슬럼가와 마을에 지역공동체를 설립하고 보수적인 상위 카스트 계층 때문에 달리트에게 닫혀있던 것들을 깨기 위해 커뮤니티에 기반한 단체인 PVCHR 설립했습니다.

 

레닌 씨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싸우는 수많은 달리트에게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달리트에 대한 이러한 헌신 때문에 그는 지속적으로 죽음의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레닌 씨는 현재 인도 우따르 프라데쉬 주에 있는 UNYO소속인 Ashoka Fellow 대표이고, 그의 공로는 2007 광주인권상 수상을 통하여 인정받았습니다. 2009년에는 덴마크의 RCT단체와 함께 공동 수상하였으며, 고문 생존자들을 위한 증언요법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레닌 씨는 2010년에는 독일의 바이마르 시의회가 수여하는 국제 인권상을 수상하였습니다.

 








Translated by Mr. Ilwoo Park, an interns from May 18 Foundation,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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